20140311 [오피니언] 오후여담 학림다방

김종호/논설위원

‘기다린다는 거/ 아, 기다린다는 거 그건/ 제 살을 한 조막 한 조막 뜯어/ 태우는 소리/ 바삭바삭이더라/ 하지만 만난다는 거/ 마침내 만난다는 건/ 갑자기 풍덩실 쓸어안은/ 한아름 끝없는 바다/ 놀라 눈을 들면/ 만난다는 거 그건/ 그동안 기다림이 빚어온/ 그 어떤 그리움이더라/ 어떤 물살에도 놓칠 수 없는 그리움.’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고색창연한 학림다방 벽에 걸려, 이곳이 범상한 찻집이 아니라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시 ‘기다림’ 전문이다.

1956년 별장다방을 인수한 사람이 서울대 문리대 축제였던 ‘학림제(學林祭)’ 이름을 차용해 문을 새로 연 학림다방은 문리대가 1975년 관악캠퍼스로 옮아가기까지 학생들에게 ‘제25강의실’로도 불렸다. 학창 시절에 학림다방을 ‘아지트’로 삼았던 서울대 출신의 걸출한 문인만 해도 전혜린·천상병·김승옥·박태순·이청준·황지우 등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많다.

본명이 김영일인 시인 김지하(73)도 그랬다. 1959년 문리대 미학과에 입학한 그는 ‘지하(之夏)’에서 현재의 ‘지하(芝河)’로 한자(漢字)를 바꾼 필명 작명 배경이 자신의 학림다방 시화전이었다고 한다. 대학생 개인 시화전은 ‘준(準)문단적 사건’이었으나 당시 문단에 다른 김영일이 있어서 필명이 필요했던 그는 어느 여름날 버스 요금이 없어 종로 1가부터 학림다방까지 걸어가며 도처의 입간판에 적힌 ‘지하’를 보고 ‘옳다! 저것이 내 필명이다’ 하고 생각했다. 재심 재판에서 2012년 대법원이 무죄를 확정한 1981년 ‘학림사건’ 명명도 관련 대학생들의 첫 모임 장소가 학림다방이었기 때문이다.

그 학림다방에 요즘 외국인 관광객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최근 종영된 SBS TV 연속극 ‘별에서 온 그대’가 중국·대만 등지에서도 큰 인기를 모았기 때문이다. 판타지 드라마 속의 주인공 도민준이 자주 찾던 장소의 촬영지가 한류 바람을 타는 셈이다. 그 드라마 효과의 지속 여부는 알 수 없지만, 학림다방류(類)의 문화 자산들이 번듯한 박물관·미술관 못잖게 소중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 콘텐츠의 저수지로 폭넓게 활용되기를 애타게 기다리고도 있다는 사실은 잊지 말아야 한다. 시인 황동일의 헌시(獻詩) ‘학림다방’ 마지막 대목을 새삼 떠올리게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1970년대 혹은 1960년대로 시간 이동하는/ 흥미로운 체험을 할 수 있는 데가/ 몇 군데나 되겠는가?/ 그것도 한 잔의 커피와/ 베토벤쯤을 곁들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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