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메드] (여행)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흔적들을 찾아서

시간은 모든 것을 변하게 한다. 사람을 늙게 하고, 건물을 낡게 만들고, 있던 존재를 없애고, 없던 존재를 있게 만든다. 서울은 그러한 시간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변한 도시 중 한 곳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묵묵히 자리를 지켜낸 것들이 있다. 자리지킴은 공간 속에서 이뤄졌다. 그 공간을 찾아갔고, 오래된 공간이 거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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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들의 사랑방 ‘학림다방’

대학로에는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다방이 있다.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대학로의 터줏대감으로 자리 잡고 있는 학림다방. 이곳은 1960년대 천상병, 전혜린, 김승옥, 이청준 등 내로라하는 문인들이 청춘을 보낸 아지트이다.

동숭동에 서울대학교 법대, 예술대, 문리대가 있던 시절, 문리대 축제 명칭인 ‘학림제’에서 유래한 ‘학림다방’은 1960년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수많은 문학인과 예술인들이 학림다방에 자리를 잡고 앉아 글을 쓰고 토론을 했다. 이 클래식한 다방을 그들은 서울대학교 문리대의 ‘제25강의실’이라는 별칭으로 불렀다.

시국을 걱정하던 젊은이들은 학림다방과 함께 나이 들어갔다. 예전처럼 문인들의 사랑방으로 존재하지는 않지만, 그 시절의 기억을 가진 사람들은 여전히 이곳을 찾는다. <별에서 온 그대>, <상속자들> 등 드라마와 영화의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젊은 사람들과 외국 손님들의 발길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

학림다방의 좁은 입구에는 황동일 시인이 학림다방에 바치는 헌사가 자리하고 있다. 이 헌사를 읽고 1층의 유리문을 밀고 들어가면 나무계단이 나오고, 이곳을 올라 낡은 나무문을 밀면 학림다방이 모습을 드러낸다. 낡은 소파, 낡은 테이블, 낡은 피아노. 그리고 핸드드립 커피향과 클래식 연주가 그곳을 가득 메우고 있다. 이곳에서 58년간 수많은 이야기가 오갔을 것이다.

복층으로 된 2층은 흡사 다락방과 같다. 유리 파티션으로 네 자리가 분리되어 있는데, 그곳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면 다방 주인장이 커피 내리는 모습,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 나누는 손님들의 모습이 한눈에 보인다.

황동일 시인의 헌사를 빌려 표현하자면, 학림다방은 그곳을 찾는 이들에게 ‘말하자면 하루가 다르게 욕망의 옷을 갈아입는 세속을 굽어보며 우리에겐 아직 지키고 반추해야 할 어떤 것이 있노라고 묵묵히 속삭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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